이변의 주인공이 될까 싶었던 호주도 이탈리아에 아쉽게 패하고..
아무리 이변이 없었던 2006년 월드컵이라지만 님들하 이게 이변이 아니면 모삼?????

(이미지 & 기사 출처: DCinside)

"...최근 등장한 '똥습녀'는 월드컵을 즐기는 자세를 넘어서 노출증의 장으로 여기고 있다는 맹비난을 받고 있다.

멀리서 찍힌 사진은 언뜻 보기에 핑크색 축구공 모양의 브라를 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누드에 바디 페인팅으로 핑크색 축구공을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뒷 모습 또한 독특하다. 엉덩이 부분을 투명한 소재로 처리해 속옷과 둔부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네티즌들은 "엉덩이를 가린 부분에 습기가 차 있다"며 항문을 이르는 명사를 따와 'XX에 습기 찬 녀(女)'란 뜻의 '똥습녀'라는 별명을 붙이거나 혹은 가슴에 그린 축구공을 연상 시키는 '젖공녀'라는 별명을 붙이고 인터넷을 통해 사진을 퍼뜨리고 있다...

내 살면서 문화적 충격 받은 일 별로 읍는데 말이지.
똥습녀야,
이건 아니잖아~ 이건 아니잖아~ 이건 아니잖아~ 이건 아니잖아~~

2006/06/27 14:30 2006/06/27 14:30

그동안 축구+핸드볼이라는 개창의적인 스포츠로 감히 월드컵을 넘봤던 스위스의 블래터 이하 (원래는) 핸드볼팀. 오늘 우크라이나에게 따끔한 맛을 보고 귀국길에 오르게 생겼다.
아예 본선에 진출하지도 말았어야 했을 쌍즈질팀.
잘가라~ 요를레이~ 요를레이~요를레이~요를레이~요를레이~요를레이~요를레이~요를레이~요를레이~요를레이~요를레이~요를레이~요를레이~요를레이~요를레이~요를레이~요를레이~요를레이~요를레이~요를레이~요를레이~요를레이~요를레이~요를레이~
얘들아 한국에 퐁듀 먹으러 한번 놀러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06/06/27 13:43 2006/06/27 13:43

마지막 경기가 너무 안타깝게 끝나서 그런지 자꾸 아쉬움이 남는가부다.
편파판정에, 아감독 선수기용에, 신문선 해설위원 말많은 것까지..
한국팬들 꼬투리 잡고 또 잡으면 끝이 없겠지 ^^ 할 말도 많고 억울하기도 하고..
하지만 가슴 졸이며 봤던 토고전부터, 토고전보다는 여유로움과 약간의 거만함까지 가지고 보게 됐던 프랑스전^^, 자력으로 16강 가자며 필승해야 한다며 젼으로 하여금 압구리로 달려 나가게 만들었던 스위스전까지.. 정말 재미 있었다.
2010년에는 못뛰게 될지도 모르는 우리 운재씨, 성실함과 착실함으로 뭉친 축구천재 박지성, 날쌘돌이 세계최고의 레프트백 이영표, 그리고 그 오기와 자존심만으로도 끝까지 해내고야 말 이천수. 비록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해서 플레이를 볼수 없어 아쉽지만 아직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차두리, 그리고 그리고 아직 젼'쓰 베스트 5에는 꼽히지 못하지만 훌륭했던 조재진.
대한민국 축구의 가능성을 엿보게 해준 2006년 6월이었다.
그래도 아시아 최고잖아. 아시아 최고이자 유럽에 맞서 싸워도 결코 기죽지 않고 당당했던 대한민국 전사들이잖아.
2010년에는 더욱 향상된 기술과 전력으로 또 다시 최선을 다해 싸워줄 것이라 믿는다..
선수 여러분. 최고가 아니었어도 최선을 다해 싸워주어서 고맙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당신들이 너무 자랑스럽고 한국이 자랑스러워서
행복한 6월입니다.
여러분 ♡  
     

2006/06/25 17:16 2006/06/25 17:16

기건 아니건 태극전사들이 제대로 낚인 거지.
깃발 들어놓고도 안들었다, 옾사이드는 개뿔, 걍 경기 진행해라.
심판들은 지대로 나몰라 패밀리 패밀리~~~
2006/06/25 12:11 2006/06/25 12:11



안녕하세요! 박지성 선수 매니져 김정일입니다.


토고전 다들 보셨죠? 저도 마음 졸이며 봤습니다. 상암 경기장이나 광화문처럼 많은 붉은악마들이 모인 곳에서는 보지 못했고요. 친구들과 같이 작은 술집에서 봤습니다. 지성이를 비롯한 모든 선수들이 열심히 뛰어주어서 다행히 1승을 건질 수 있었네요.


앞으로 남은 프랑스와 스위스 전에서도 좋은 결과를 낳아서 16강 진출을 할 수 있음 좋겠습니다! 대! 한! 민! 국!



또 무슨 이야기를 써야할까 고민을 하다가 제가 지성이 다음으로 좋아하는 반니 선수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제가 훨씬 이전부터 반니 선수의 왕팬이었거든요. 축구도 잘하고, 자기 관리에도 충실하고 등등의 이유로 반니를 좋아하고 있었는데, 맨유에 와서 실제로 반니스텔루이 선수를 만나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정말 인간적으로 훌륭한 선수더군요. (게다가 저랑 동갑이라죠 ^^)


누군가 저에게 "지금껏 만나본 사람 중에서 최고의 인격체가 누구인가?"라고 물어본다면 저는 서슴없이 "반 니스텔루이"라고 이야기 할 겁니다. 그정도로 그는 정말 최고의 매너를 가진 사람입니다. 포장되거나 가식된 예절이 아니라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따스함으로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정말 신사 중에 신사죠.


제가 그렇게 느꼈던 이유를 알려드릴께요. 모두들 잘 아시고 계시겠지만 맨유에서 가장 지성이와 친한 선수가 바로 이 반니 선수입니다. 반니는 지성이가 입단하자마자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을 줬었죠. 아마도 같은 PSV 출신이라 더욱더 친절하지 않았을까라고는 하지만 반니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길쭉한 신사는 지성이가 어디 출신이던 상관 없이 친절을 베풀었을 거라는데에 의심을 하지 않을 겁니다.


한번은 지성이와 지성이 아버님, 저, 그리고 아는 한국분과 그분의 조카가 식사를 하러 자주 찾는 중국식당에 갔었습니다. 그런데 그 식당에 반니 선수도 단골이었어요. 그 이전에도 함께 식사를 하려고 찾아갔던 곳이거든요. 그날도 우연히 식당에서 반니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성이 아버님께서 인사를 하려고 와인을 한병 그쪽 테이블로 보내셨습니다. 역시나 예의바른 반니는 식사를 마친 이후에 답례를 하려고 우리쪽 테이블로 오더군요. 반니는 지성이나 아버님 뿐 아니라 우리 테이블에 있는 모든 사람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어요. 특히나 제가 눈여겨 보았던 부분은 같이 있었던 분의 조카에게 말을 거는 반니의 태도였습니다. 반니선수는 어린애 앞쪽에 서더니 갑자기 무릎을 꿇는거에요. 왠일인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 그런 자세를 취한 거더군요.


왜 예전에 눈높이 교육이라는 CF를 보면 아이의 눈높이에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교사들이 키가 작은 아이의 눈높이에 자기눈을 맞추잖아요. 근데 키가 190이나 되는 양반이 그 큰 덩치를 숙이며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니 정말 웃기기도 하면서 짠한 것이 있더라고요. 게다가 아이를 보는 반니의 눈빛이란 정말!!


그런 친절함은 글쎄요. 제 생각에는 꾸미거나 연습으로 되는게 아니잖아요. 저는 아무리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의자에 앉아있는 아이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자세를 낮추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만, 그 이후부터는 왠지 저도 그렇게 따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너무너무 친절한 반니씨의 일화는 이게 끝이 아닙니다. 한번은 제가 박지성 선수를 픽업하려고 셰링턴에 있는 연습구장에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요. 연습이 끝나고 난 이후에 지성이는 샤워를 하러 들어가고 저는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저기 아주 아주 아주 멀리서 반니 선수가 저를 알아보고서는 마구 뛰어오는 거에요. 마치 골대를 향해 드리블을 해올 때처럼요. 저는 혹시 아니 내가 뭐라도 잘못한게 있나하고 안절부절 하고 있는데, 제 앞으로 오더니 아주 반갑게 악수를 청하는 거에요. 그러면서 한국식 악수를 이렇게 하는게 아니냐며 (왜 그 왼손으로 오른손을 잡고 하는 악수 있잖아요), 지성이에게 배웠다고 그러더라구요. 사실 거리도 상당히 멀었고, 힘든 훈련을 마치고 난 이후라 그렇게 먼 거리를 달려와 인사를 할 필요도 없었을텐데, 그렇게까지 하는 반니 선수가 너무 고맙더라구요. 저는 동료 선수도 아닌 동료의 매니저일뿐인데 말이죠.


또 한번은 월드컵을 앞두고 반니선수와 지성이가 독일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N모 스포츠 용품사(다들 아시죠? ^^)에서 각국의 유니폼을 발표하는 쇼케이스가 있었거든요. 전 세계의 난다 긴다하는 유명 선수들을 한자리에서 만나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도 반니씨의 친절함은 빛을 발했습니다. 왜 그런데 가면 간단한 과일이나 쿠키등의 다과를 준비해 놓잖아요. 근데 반니씨가 직접 작은 접시에 그런 간식거리들을 담아서 지성이랑 저한테 갖다 주시는거에요. 저는 완전 감동모드. TT


이런 반니선수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면 정말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씨가 뭍어나는거 같아요. 세계최고의 센터포드지만, 자만하지 않고 스스로를 낮출 줄 아는 선수. 경기장 안에서 터프한 움직임을 보여줄 때는 정말 저 사람이 반니가 맞나하는 생각이 들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정말로 친절한 남자. 그가 바로 반 니스텔루이 선수입니다.


월드컵이 끝나면 아마도 맨유를 떠나갈 것 같아서 참 섭섭하네요. 개인적으로는 그가 먼 다른 리그가 아닌 EPL 내의 다른 팀으로 갔으면 하고 바란답니다. 그렇게 된다면 리그 중에 몇번은 그를 볼 수 있을테니깐요. 맨유 수비수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요 ^^


그가 어디로 가던지, 항상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반 니스텔루이 선수. 파이팅!!

2006/06/25 01:04 2006/06/25 01:04

박지성

Soccer/2006 WorldCup 2006/06/24 22:13
(네이버 포토 펌 )
"원정에서 첫승을 거둔 것에 만족한다"
"심판 판정도 경기의 일부분이다"

경기 종료후 이천수, 조재진처럼 울지 않고 담담하게 스위스선수와
유니폼을 교환하고 짝다리 짚고 물마셨다고... 일부 네티즌들에게
국민영웅에서 국민역적이 된 박지성.
거만해졌다...개념없다..밤새고 응원한 국민들한테 고작 첫승에
만족하다, 판정도 경기의 일부분이다. 이게 할 소리냐...
심지어 쪽바리같은 놈이다.. 수많은 악플들....
이천수는 스위스전 최고스타가 되었다. 오열하는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었다고..

우는건 쉽다... 우는건 정말 쉽다...
누구나 서럽고, 슬프고, 억울하고,
미칠 듯이 원하는 걸 못가지면 울 수 있다.
열심히 노력했다면 누구나 울 수 있다...

박지성은 이천수보다 덜 서럽고, 덜 슬프고, 덜 억울하고...
정말 첫승에 만족했을까...
전에 있었던 맨유와 토튼햄 경기에서 이영표의 실책을 가로채
루니에게 어시스트해서 골을 넣고...
이영표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뒤에서 살짝 이영표 손을 잡아준
마음약한 박지성...
월드컵이 열리기 몇달 전부터 손목에 차고있는
천원짜리 붉은 투혼팔찌...

박지성이 울고 있는 우리나라 선수들을 외면하고 스위스 선수들과
웃고 있는 건 보기만해도 자신도 울어버릴테니까... 애써 외면했겠지.
4800만 중 누구보다 더 크게 소리쳐 울고 싶을텐데... 참았겠지...
아시아 최초 맨유맨이자... 세계최고 클럽의 주전 윙포워드니까...
한국이 아닌 아시아를 대표하는 선수니까...
아시아의 자존심이 고작 스위스따위한테 패하고 눈물을 보여선
안되니까... 유럽인들은 어쩌면 재2의 네드베드라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 작은 동양인이 자신들 앞에서 절망하길 바랬겠지만
그는 패배 앞에 당당하고 떳떳했다.
패배와 탈락의 슬픔의 부피가 그의 꿈의 부피를 채우지 못했나보다.
박지성의 꿈은 16강 보다 훨씬 위에 있나보다...

우리가 경기장에서 박지성의 눈물을 보게되는 날이 온다면...
그땐 우리나라 가슴에 별이 하나 달리지 않을까...ㅎㅎ;;;

그전에 펠레 주둥이부터 어떻게 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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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백만배...
든든한 박지성씨 잘했습니다. 엉엉 울어버린 이천수도 마음이 짠하지만
애써 울지않고 자존심 지킨 당신도 자랑스럽습니다.
2006/06/24 22:13 2006/06/24 22:13

2006년 6월 23일 새벽.
스위스와의 G조 마지막 경기에서 우리 대한민국팀, 0대2로 경기를 마감하며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태극기 뒤집어쓰고 경기보러 나갔던 젼. 지난 2002년 때 차두리처럼 머리에 뒤집어쓰고 승리의 기쁨을 즐기려고 했는데...

수차례 이어진 한국의 파울 판정으로 경기의 맥을 끊어놓던 주심 개새. 스위스의 명백한 파울임에도 불구하고 휘슬을 불지 않았다.  
심지어 태극전사들 진로방해까지 했다지. 핸들링도 3번씩이나 보고 못본 척하고, 오프사이드 깃발을 올린 부심을 개무시하고 골처리까지 했다지. 후반 32분, 무지막지 휘몰아쳐오던 울 선수들의 경기 운영에 찬물을 끼얹은 그넘. 후에 그 넘의 정체는 스위스 주장으로 밝혀졌다지 -_-; 거기 개새요!! 씹하 개새요!!!

내가 아르헨티나.. 진짜 울 나라 담으로 응원하려고 했는데, 솔직히 그럴 예정인데, 그 주심 개새 아르헨티나넘. 너 피파 회장한테 잘보여서 인생 얼마나 잘 풀릴지 두고 보자.
그리고 스위스 니네, 결과에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월드컵 개최국도 아니고 모하는 것들이냐. 조낸 운빨 좋고 기껏해야 피파회장 어드밴티지 (듣다듣다 이런 어드밴티지는 처음 듣는다)로 16강 간 거. 스포츠맨이라면 부끄러워 해라.

울 초롱이 이영표. 경기 후 "경기 결과는 받아들인다"고 인정하면서도 "주심이 오늘 집에 가서 경기를 다시 본다면 자신의 실수를 느낄 것이다"고 단언했단다.  

이번 월드컵으로 안티 반으로 줄어든 이천수.
공격수가 최후 수비 자리까지 왔다갔다 하면서 끝까지 공 놓치지 않으려고 죽어라 뛰던 이천수가 경기가 끝난 후 그라운드에 얼굴을 파묻고 울어 버렸다.

심판의 판정에 대해서는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 없다"고 밝히면서 "그 골이 패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 같아 아쉽다. 다음부터는 이런 판정을 염두에 두고 경기에 나서야겠다"고 말했단다.

젼의 영원한 히어로 "우리 운재씨." 경기의 부족한 점을 묻자 "지금 막 끝나서 아무 생각도 없다"던 이운재는 다만 "국제 심판의 수준이 그 정도라는 것이 아쉽다"면서 주심 호라시오 엘라손도의 판정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단다. 그러니까 내 말이 운재씨! 어느 개새가 우리 운재씨 돼지라고 했어 썅!

이뻐 죽겠는, 성실함으로 똘똘 뭉친 축구천재 위숭빠레 박지성.  "결과는 나왔고 그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심판 판정이 애매한 부분이 있었지만 경기의 일부분이다"며 담담한 태도를 보였단다. 결과에 승복할 줄 아는 멋진 스포츠맨쉽.

태극전사 여러분. 그리고 특히 위 네분.
2010년도 있고, 2014년도 있고, 월드컵은 계속 됩니다. fair sportsmanshiip이 사라진 광경을 목격해버리고 만 이번 월드컵이지만, 그래도 계속될 월드컵. 오늘 5대2로 이겼을 경기가 끝나고 억울함에 눈물 쥘쥘 흘린 젼을 포함한 국민들이 항상 뒤에서 서포팅하고 있다는 사실만 기억해주시면 됩니다. 이번에도 잘 싸우셨고, 다음에도 잘 싸워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2006/06/24 13:10 2006/06/24 13:10
[동아일보]

《평발인 줄도 모르고 열심히만 뛰면 되는 줄 알았던 미련퉁이 축구선수가 있다. 20세가 되던 해인 2001년 어느 날 그는 경기를 뛰고 나니 발이 퉁퉁 붓고 너무 아파 병원을 찾았고 의사는 “평발이니 되도록 뛰지 마라”고 말했다.

자신이 평발이라는 사실을 축구선수가 된 지 10년이 지나서야 안 것이다. 더벅머리에 아직도 여드름 자국이 남아 있는 얼굴. 순박한 시골 청년 같은 그가 바로 ‘한국축구의 심장’ 박지성(25·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다.》

박지성은 질그릇처럼 투박하고 우직하다.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난 박지성은 경기 수원시 산남초등학교 3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다.

아버지 박성종(48) 씨는 외아들이 공무원이 되기를 바랐지만 축구선수로 재능을 보이자 경기장을 줄곧 따라다니며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한 열성 아버지였다.

박지성은 아버지, 지도자, 선배의 말이라면 곧이곧대로 믿고 따르는 순둥이다. 입이 짧은 박지성이었지만 당시 정육점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체격을 키워야 한다며 매일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장만해 주어도 싫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수원공고 시절 “여자친구 만들면 선수 생명 끝난다”는 선배 말을 듣고 미팅 한번 하지 않고 운동에만 열중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박지성은 여자친구가 없다.

‘바른생활 청년’ 박지성. 순수하고 성실한 덕분에 잉글랜드 프로축구리그의 ‘호랑이 감독’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도 박지성에게만은 다정다감하다. “건방지다”는 불호령과 함께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에게 축구화를 던진 다혈질의 감독이지만 말 잘 듣고 성실한 박지성만 보면 미소를 감추지 못한다.

이적료 74억 원, 연봉 35억 원에 한국인 최초의 프리미어리거가 된 박지성이지만 긴 무명 선수 생활을 겪었다. 수원공고 시절 가냘픈 몸매에 평범한 그를 데려가려는 대학이나 프로 팀이 없었다. 당시 이두철 수원공고 코치가 은사였던 김희태 전 명지대 감독에게 박지성을 추천했다. 대학에 입학한 뒤에야 웨이트트레이닝으로 힘을 기른 그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고 허정무 현 전남 드래곤즈 감독이 이끌던 올림픽대표팀에 합류하며 재능을 활짝 피웠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거스 히딩크 감독을 만나면서 국제적인 스타로 발돋움할 기회를 잡았다.

19일 열린 2006 독일 월드컵 프랑스전에 공격수로 나선 박지성. 이 경기에서 그는 ‘투혼의 질주’를 펼쳤다.

“컨디션이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기회가 별로 많이 오지 않을 것도 알고 있었고요….” 프랑스전에서 동점골을 넣으며 한국을 위기에서 구해 낸 박지성은 악조건 속에서 뛰었다고 말했다.

양 팀 모두 체력이 바닥나 가던 후반 36분. 특유의 달음박질로 프랑스 문전 앞에 다다른 그는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재진의 헤딩 패스를 받아 프랑스의 골문을 흔들었다.

“지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골을 넣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재진이가 공을 받을 때 공을 줄 곳이 한 곳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세계 대부분의 언론은 경기 전부터 한국의 패배를 점쳤다.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던 프랑스의 위용은 거대했다. 슈퍼스타 지네딘 지단티에리 앙리는 한국팀에는 ‘골리앗’이었다. 한국은 전반 9분 만에 골을 빼앗기고 끌려 다녔지만 결국 박지성의 골로 위기에서 탈출했다.

13일 토고전에서도 선제골을 잃고 끌려 다닐 때 대역전극의 발판을 마련한 것도 바로 박지성이었다.

한국은 그의 질주에 환호했다. 그리고 보통사람들의 영웅인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고 있다. 붉은악마 독일 원정 카페를 비롯한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대한민국 축구의 기둥’ 등 박지성을 칭찬, 격려하는 수백 개의 글이 게시됐으며 ‘박지성 어록’과 ‘지성이의 일기’를 찾아보는 사람이 급속히 늘고 있다. 박지성의 사진과 함께 인터넷에 돌고 있는 ‘박지성 어록’에는 ‘불가능이란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어야 한다’, ‘쓰러질지언정 무릎은 꿇지 않는다’, ‘도전이 없으면 큰 성공도 없다’는 등의 글이 실려 있어 그의 강인한 정신과 성실함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런 박지성이 있어 너무 행복한 6월이다.

라이프치히=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2006/06/20 18:32 2006/06/20 18:32
한국 대표팀 회복훈련 '이영표, 이운재, 박지성'
[연합뉴스 2006-06-20 05:33]

스위스가 토고를 2-0으로 물리침에 따라 한국의 스위스전 승리가 독일 월드컵 16강 해법으로 떠오른 가운데 20일 새벽(한국시간) 레버쿠젠 바이 아레나 구장에서 열린 회복훈련에서 이영표가 몸을 풀고 있다./특별취재반/한상균/축구/월드/2006.6.20 (레버쿠젠=연합뉴스) xyz@yna.co.kr (특별취) <모바일로 보는 연합뉴스 7070+NATE/ⓝ/ez-i>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6/06/20 18:09 2006/06/20 18:09
[중앙일보 2006-06-19 06: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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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한국에서 우리 부자의 얘기가 화제라고 한다. 도대체 뭐가 재밌다는 건지 나로서는 이해가 잘 안 갈 뿐이다.

젊은 세대, 그들의 생각과 감각을 이렇게 이해하지 못하면서 내가 그들과 함께 몸을 섞고 일을 하고 있는 게 맞는 일인지 걱정스러울 정도다.

요즘 TV에 나와 정신없이 떠드는 녀석이 하나 있다. 노홍철이라고. 몇 년 전, 우리 가족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이 친구가 왔다. 큰딸(하나) 대학 동기의 남자친구라고 하면서. 쓸데없는 얘기지만, 딸의 대학 동기는 유로 상공회의소를 거쳐 G그룹의 경영전략실에 근무하는 멀쩡한 재원이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이 남자친구를 보자 기가 막혔다. 그런데 아이들은 재미있어 좋다고 했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이해하기 힘든 세대차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상황이 노홍철이를 처음 봤을 때만큼이나 곤혹스럽고 불편하다.

나는 10년간의 독일 분데스리가 생활 중 선발로 못 나온 게 딱 두 번 있었고, 중간에 교체돼 나온 게 한 번 있었다. 그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줄 알았다. 내가 얼마나 심하게 낙담을 했으면 감독이 그 다음 경기 전에 나를 불러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다음부터 너를 빼려면 미리 말해줄 테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고 뛰어라!"

그 당시 나에게 축구는 생활이 아니라 '밀리면 끝나는 전투'였던 것 같다. 그런데 아들 두리는 확실히 다르다. 축구는 '자신을 행복하게 해 주는 생활'인 것 같다. 축구를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좋은.

그러니 TV 해설을 하면서 이놈은 "전 그때 후보라서 잘 몰라요"라고 멀쩡하게 얘기하는데 옆에 있는 내가 진땀이 났다.

내가 두리에게 배우는 게 하나 있다. 언젠가 자전적인 글에도 썼던 적이 있지만 '남의 행복이 커진다고 내 행복이 줄어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이 녀석은 항상 여유가 있다. 늘 최고여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남을 인정하는 여유가 없는 나에 비해 두리는 동료를 인정하는 여유가 있다. 그래서 두리의 삶이 나보다 더 즐거운 모양이다.

'행복이'.

두리의 e-메일 닉네임이다. 굳이 그런 이름을 쓰는 걸 보면 천성이라기보다는 행복하고 싶어 스스로 하는 노력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연예인들을 얘기하듯, 외국 축구선수들의 사생활까지 줄줄 꿰는 두리가 옆에 있으니 든든하다. 스페인의 황태자비가 화면에 잡히자 '예쁘죠?'하는 말이 하고 싶어서 혼났다며, 중계를 마치자마자 황태자비의 전력에서부터 사생활까지 쫙 얘기해 준다.

두리와 함께 해설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정한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한때 '기자'를 꿈꿀 정도로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두리에게 도움을 받고 싶었던 것도 그중 하나였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이전처럼 유럽축구에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축구의 흐름을 읽는 거야 자신이 있지만, 선수들의 현재 상황을 팬들에게 현실감 있게 설명해 줄 경험과 정보가 부족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두리는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었다. 또 나와 다른 요즘 아이들의 생각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친구들의 얘기를 하는 것이니 내가 하는 것보다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본인도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축구선수이면서 베컴의 자서전을 머리맡에 놓고 잠들거나 지단에게 가서 공에 사인을 받고는 즐거워하는 것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상대가 아무리 대단한 선수였어도 나에게는 한번 붙어 보고 싶은 경쟁자일 뿐이었다.

우리 시대의 삶은 '성공'에 모든 것을 두었다. 그러나 두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행복과 즐거움'이 그들의 중심에 있는 것 같다.

부럽다. 그리고 이런 세상을 그들에게 물려준 우리 세대가 자랑스럽다.

차범근 수원 삼성 감독, 중앙일보 해설위원

2006/06/19 22:58 2006/06/19 22:58